상단 이미지
안전소식
총 : 57건
(긴급진단)전통시장 화재, 해법은 (2)‘전기안전 사각지대’ 세운상가
등록 : 2017-04-13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네이버블로그
구글플러스

(긴급진단)전통시장 화재, 해법은 (2)‘전기안전 사각지대’ 세운상가

火魔가 ‘호시탐탐’ …났다하면 ‘대형참사


한 점포의 전면 진열장을 밝히는 전등 한쪽이 삐딱이 꽂혀있다. 세월의 흔적을 담은 듯 온통 검은 먼지를 뒤집어쓴 낡은 전선은 천장에서 전구로 위태로이 뿌리를 내린다. 3월 29일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에서 처음 마주한 풍경이다.
볕이 들지 않는 좁은 상가 내부 통로를 따라 걸으니 또 다른 ‘위태로움’이 눈에 들어온다. 높이가 3m도 채 되지 않는 낮은 천장에 절연테이프를 뭉텅이로 단 연선 전선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벽면에 설치된 전선 접속함은 내부에 가득 찬 분진으로 형태를 분간하기 어렵다. 전선이 과열돼 테이프 틈새가 벌어지거나 접속함 내부에 습기라도 차는 날엔 화재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환경이다.
세운상가는 한때 ‘국내 유일 전기·전자 종합상가’라는 지위를 누렸다. 예전 같지는 않더라도 여전히 전기·전자기기 판매로는 순위권에 꼽힌다. 그러나 수십 년이 흐른 오늘날 세운상가엔 새로운 타이틀이 추가됐다. 바로 ‘전기안전 사각지대’라는 불명예스러운 수식어다.
세운상가는 지난해 중소기업청과 한국전기안전공사가 공동으로 실시한 전통시장 전기안전점검에서 D등급 이하 점포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시장으로 분류됐다.
D등급은 전기설비를 즉시 개·보수하거나 사용을 제한해야 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총 413개 점포가 운영되고 있는 세운상가 가동은 이번 점검에서 무려 395개사가 D등급을 받았다. 안전에 위험이 있어서 사용을 제한해야 하는 상태인 E등급을 받은 점포도 10개나 있었다. 사실상 대부분의 점포가 전기 안전 낙제점을 받은 셈이다.
상가 전기 보수관리자인 A씨는 “자체적인 전기설비 개·보수 작업은 실시하고 있으나 대부분 상가 공용설비에 국한돼 있다”고 전했다. 사실상 개별 상가의 설비 개선은 점포별 상인의 몫인 셈이다.
“각 동마다 전기 보수관리자와 보조 직원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별 점포는 사실 우리가 손대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아파트 관리와 유사하다고 보면 됩니다. 건물 전체의 설비 관리는 할 수 있어도 가정마다 직접 들어가 이것저것 열어볼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층계를 오르다보니 주먹 하나 들어갈 틈 없이 다닥다닥 붙은 점포들이 눈에 띈다. 이처럼 점포들이 빽빽이 밀집된 경우 일단 불이 나면 번지는 속도가 빨라 손을 쓰기 어렵다. 지난해 대구 서문시장 화재를 시작으로 올해 잇따라 발생한 여수 수산시장, 인천 소래포구 어시장 등 전통시장 화재 사고가 그 예다.
점포 내부에 전선·조명·전자기기들처럼 불에 타기 쉽고 폭발의 위험이 있는 제품들이 박스째 쌓여 있는 점도 불안감을 키운다.
세운상가에 입주 중인 점포주들은 이러한 위험을 인지하고 있을까. 외부로 축 늘어져 노출된 전선들, 전원플러그 열 댓 개를 이어둔 문어발 멀티탭 등 불안해 보이는 설비가 눈에 띄는 한 점포에 들어가 이야기를 나눠봤다.
십수 년째 세운상가에서 음향장비를 팔아왔다는 한 점포주는 “전기안전등급 발표 결과를 아느냐”고 묻자 “들어본 적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부실한 전기 설비를 개선할 생각이 있느냐”는 물음엔 “잘 모르겠다”며 말끝을 흐렸다.
이 매장 바깥에는 대형 앰프 등 다양한 음향제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전선 끝에 세월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눌러 붙은 먼지가 눈에 띈다.
연이어 찾은 다른 매장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자기기·조명 업체 등 분야를 막론하고 대부분 점포주가 전기안전등급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세운상가가 전기화재 위험이 높다고 설명하고 전기설비 교체가 필요하지 않겠냐고 물어도 크게 개의치않는 눈치다.
“여기, 천장에 달린 전선 좀 보세요. 이게 사실 외부 노출 전용 전선이거든요. 일반 전선의 한 다섯 배 굵기가 되죠. 그래야 내열·내습이 가능하니까. 나야 이걸로 먹고 사는 사람이라 설비 시공을 해도 알고 하지만, 여기 사람들은 안 그래요. 다들 팔 줄만 알지 전문 지식이 없어요.”
세운상가에서 20년 가까이 자리를 지켜온 한 전자기기 업체 대표는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는 “사실 전기안전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개인의 전기안전 인식”이라며 “돈이 좀 더 들더라도 전문 지식이 있는 전기공사업체에 시공을 맡기는 게 안전을 지키는 일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런데 여기 사람들이 먹고 살기 빠듯하다 보니 한 푼이라도 아껴보려고 본인이 직접 시공하거나 전기를 조금이라도 아는 지인에게 일을 맡기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돈 한두 푼에 생계가 달린 사람들이라 이해는 되지만 그 때문에 상가 전체가 위험해지고 있다는 생각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전기안전공사에 따르면 앞으로 서울시는 전기안전관리등급 결과에 근거해 위험지역부터 우선적으로 개선작업을 실시할 계획이다. 하지만 올해 대상 시설물에서 세운상가는 빠졌다. 전기안전등급제 결과가 우선 개·보수 대상 선정 이후 발표된 탓이다. 세운상가는 내년이 돼야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전망이다.
이번 취재에 동행한 전기안전공사 서영환 부장은 “전기안전 관리가 어려운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며 “겉보기엔 멀쩡해 보여도 위험을 감지하기 어렵고, 설령 개·보수를 한다고 해도 그 효용을 크게 느끼기 어려워 사업주들에게 낡은 전기설비 개량은 늘 후순위가 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세운상가는 우선 개·보수 대상으로 선정되는 내년까지 ‘대형 화재 사고’란 이름의 위태로움과 공존해야 한다. 전기안전관리 인식도, 대책도 부재한 세운상가엔 오늘도 ‘보이지 않는 위험’이 검은 몸집을 키워가고 있었다.


해당 기사의 원본 바로가기

작성 : 2017년 04월 03일(월) 15:42
게시 : 2017년 04월 05일(수) 09:51


진시현 기자 jinsh@electimes.com


기사내용 메일로 보내기

메일 주소를 입력해 주십시오.

(or press ESC or click the overlay)

주소 : 우)08805 서울시 관악구 남부순환로 2040(남현동 1056-17), 대표전화 : 1899-3838
Copyright 2016 Korea Electric Engineers Association all right reserved,사업자번호:120-82-02744